


사진: Jeff Marini
2013년 태풍 하이옌이 상륙한 날 아침, 마닐라 상공의 하늘은 회색으로 변했다. 필리핀 수도에 위치한 호세 파벨라 기념 병원에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당시 필리핀 내 최초의 모유은행 중 하나였던 이 병원 모유은행의 책임자였던 에스트렐라 '스타' 주시 박사는 기증받은 모유 비축량에 관한 문의 전화를 연이어 받았다. 타클로반시는 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태풍 중 하나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전기는 끊기고 물은 부족했다. 도시의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있는 신생아들, 특히 가장 작고 아픈 아기들은 긴급한 도움이 필요했다.
보건국은 기증된 모유를 시급히 확보해야 했다. 주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전국의 다른 모유은행들에 연락해 비축분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냉장 박스를 포장하고 라벨을 붙였다. 도로가 차단되고 상업용 항공편이 운항 중단된 상황에서, 그녀는 군 관계자들과 협력해 군 수송기 공간을 확보했다.
주시의 팀 소속 신생아 전문의 한 명이 냉동 모유를 운반하는 데 동행하겠다고 자원했다. 모유은행은 여러 차례에 걸쳐 86리터의 저온 살균 처리된 기증 모유를 전달했는데, 이는 아기들에게 있어 생존을 위한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 기술자가 기증된 모유가 담긴 병을 들어 보이고 있다.
모유은행은 별로 언급되지 않는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즉, 산모가 갓난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기가 조산아이거나 젖을 물기에는 너무 작을 수도 있고, 산모가 수술 후 회복 중이거나 모유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생후 첫 주가 혼란스럽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건강하고 만삭으로 태어난 신생아에게는 분유가 안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건강이 취약한 영아들에게는 산모들이 기증한 모유가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선택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모유는 미숙아에게 흔히 나타나는 장 질환인 괴사성 장염을 비롯한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UNICEF)는 모유가 공급되지 않을 경우, 특히 저체중아와 조산아에게 기증 모유를 최우선 수유 방법으로 권장하고 있다.
태풍이 닥치기 전부터 타클로반과 필리핀 전역, 특히 미숙아들 사이에서 영양실조는 심각한 문제였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필리핀 5세 미만 아동 4명 중 1명 이상이 발육 부진 상태이며, 이는 만성적인 영양 결핍으로 인해 신체적·인지적 발달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저체중아와 조산아의 경우, 모유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감염, 발달 지연, 사망의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
“아기들이 조산아이거나 아픈 상태라 하더라도, 생의 첫걸음을 가장 좋은 조건에서 내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주시 박사는 말한다.
지난 10년 동안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탄탄한 모유은행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한 로타리클럽의 실험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30건이 넘는 로타리재단의 글로벌 보조금의 지원을 받아 필리핀 전역 39개 병원으로 확산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2013년, 당시 티모그-케손시티 로타리클럽 회장이었던 레나토 칸토스가 클럽의 대표 프로젝트를 모색하던 중 탄생했다. 한 로타리안 회원의 아내가 회원들에게 파벨라 병원을 방문해 보라고 제안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2008년부터 모유은행을 운영해 온 주시 박사를 만났다. “모유은행에 대해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라고 칸토스는 말한다.
그해, 그의 클럽은 글로벌 보조금을 확보하여 새로운 살균기를 구입, 기존 기계의 고장으로 운영이 중단되었던 모유은행이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후 클럽은 여러 병원에 모유은행을 추가로 설립하고, 유사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다른 지역 클럽들을 지원해 왔다. 로타리클럽들의 지원은 개인 기부자 및 보건부와 함께 시설 수를 5개에서 39개로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마닐라 데 라 살 대학교의 한 학생은 2019년에 작성한 석사 학위 논문에서 모유은행 프로젝트를 위한 표준화된 로타리 글로벌 보조금 양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왼쪽: 웨스턴 그레이트 레이크 모유은행에서는 각 기증자의 모유 샘플을 소량 채취하여 유해 세균 감염 여부를 검사한다. 오른쪽: 여러 기증자의 모유를 혼합하여 영양 성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항체 구성도 균형을 맞춘다.
모유 나눔이라는 개념은 수 세기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여성이 다른 사람의 아이에게 젖을 먹이던 유모 관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정식 모유은행은 20세기 초에 들어서야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의 모유은행은 1909년 빈에 설립되었으며, 그 직후 보스턴에도 하나 설립되었다. 수십 년 동안 모유은행은 신생아 치료 분야에서 조용히 틈새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1980년대 에이즈 사태가 발생하면서 기증자의 모유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많은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재개된 연구와 새로운 안전 지침 덕분에 이 관행은 다시 부활했다. 모유은행들은 영양소는 보존하면서 병원균을 제거하기 위해 우유를 정확한 온도에서 30분간 가열하는 저온 살균법과 같은 표준화된 방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또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헌혈 시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기부자 심사 절차도 도입했다. 이러한 지침은 의료진과 공중보건 관계자들을 안심시켰고, 기증된 모유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수유 방법이라는 신뢰를 회복시키는 데 기여했다.
호주에서는 벨몬트 로타리클럽과 쏜리 로타리클럽, 그리고 벨몬트 클럽 회원인 스탠 페론이 2006년 호주 최초의 현대식 모유은행 설립을 주도했다. 이는 마을 산부인과 병동에서 비공식적으로 모유를 공유하던 관행이 사라진 지 수십 년 만의 일이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타났다.
오늘날 브라질은 모유은행 분야의 세계적인 선두주자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24건의 글로벌 보조금 지원을 통해 브라질 전역에 200개가 넘는 모유은행이 설립되었다. 공공 보건 시스템에 통합된 브라질 모델은 콜롬비아와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 영감을 주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주로 병원 내 신생아 병동과 연계된 모유은행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저소득 국가에서는 모유은행이 여전히 드문 편이다.
북미 지역에서도 모유은행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저온 살균 처리된 기증 모유에 대한 지침을 제정하는 북미모유은행협회에 따르면, 2024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1,100만 온스의 기증된 모유가 배포되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0%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자동 병입 라인을 통해 기증된 모유를 병에 담고 뚜껑을 닫은 뒤 라벨을 붙인다.
웨스턴 그레이트 레이크스 모유은행은 협회에서 인증한 30여 곳의 비영리 모유은행 중 하나이다. 전직 로타리 직원이 공동 설립하고 여러 로타리클럽의 기부금으로 운영되어 온 이 시카고 지역 모유은행은 일리노이와 위스콘신 주의 90개 이상의 병원에 모유를 공급하고 있다. 이 단체는 2015년 첫 가공 시설을 개소한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으며, 직원 수가 3명에서 25명으로 늘어났고, 작년에는 북미에서 단 두 곳 뿐인 병입 컨베이어 벨트를 갖춘 새로운 시설로 이전했다.
사전 심사를 통과한 산모들은 지역 곳곳에 마련된 ‘모유 수거소’에 기증할 모유를 맡기면, 자원봉사자들이 냉동된 모유를 단열 용기에 담아 모유은행으로 운송하여 가공 및 저온살균 처리를 가한다. 모유은행 프로그램 관리자인 수잔 우르반스키는 "어떤 어머니들은 정말 많은 양의 모유를 생산하죠. 이렇게 소중한 것이 낭비되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아요"라고 들려준다.

오른쪽부터: 리즈 코트니와 이본 히스케뮐러가 로타리클럽이 후원하는 모유은행에서 모유를 기증하는 수유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크레딧: Sahand Jahani
우르반스키는 일부 엄마들이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 기증받은 모유가 필요했지만, 수유 지원을 받은 후에는 성공적으로 모유 수유를 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 은혜를 갚고 싶어 한다고 들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모유은행은 모유 수유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돕는 역할을 한다. 어떤 엄마들은 아기가 자신이 섭취하는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모유는 여전히 문제가 없지만, 자신의 아기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어떤 엄마들은 사별 후, 시카고 지역 모유 은행에서 제공하는 것과 같은 사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기증을 하기도 한다. 우르반스키는 "이러한 비영리 모유은행의 특별한 점은 때때로 간과되곤 한다"면서 "목표는 아기의 유산을 기리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이 아이디어는 좌절감에서 시작되었다. 가든 시티 크라이스트처치 로타리클럽 회원이자 조산사인 이본 히스케뮐러는 시내 한 병원의 모유은행에서 일했지만, 곧 그 한계를 깨달았다. 서비스는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만 제공되었고, 퇴원 후의 산모들을 지원할 계획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로타리클럽에 도움을 청했다.
당시 지구총재였던 리즈 코트니는 그 가능성을 즉시 알아차렸다. 세 쌍둥이를 포함해 다섯 아이의 엄마인 코트니는 초기 수유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히스케뮐러는 함께 헌신적인 여성들, 즉 로타리 회원, 수유 전문가, 기타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다음 4년 동안 기금을 모으고, 행정 절차를 헤쳐나가며,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대안을 구축해 나갔다.
그 결과 2018년에 크라이스트처치의 또 다른 병원인 세인트 조지 병원에 지역사회 모유은행이 문을 열게 되었다. 이 저장소는 냉동고 3개, 저온 살균기 1개, 그리고 로타리 회원, 조산사, 간호사 등 많은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간소한 인프라로 운영되지만,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로타리재단은 모유은행 프로젝트에 약 100건의 글로벌 보조금을 지원했다.
모유은행은 매일 분주하게 움직인다. 기증자들은 냉동 모유가 담긴 봉지를 가져오며, 각 봉지에는 라벨이 부착되고 추적 관리되며 꼼꼼하게 보관된다. 선별 과정은 설문조사, 혈액 검사, 냉동 보관 기록을 포함하는 등 매우 엄격하게 진행된다. 자원봉사자들은 주당 평균 8리터의 모유를 저온 살균하는데, 이 과정에는 6~8시간이 소요되며 무균 가운 착용, 체온 측정, 상세한 기록 작성이 필요하다.
이 모유를 받는 대상은 주로 건강이 취약한 신생아나, 수술 후 회복 중인 산모, 또는 모유 분비가 늦어지는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기들이다. 크라이스트처치 모유은행에서 북쪽으로 약 240km 떨어진 시골 마을의 한 아기는 심장 수술을 받기에는 너무 연약해서 집에서 모유를 먹어야 했다. 담당 의사들은 분유를 먹이면 수술대에 오르기 전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유일한 방법은 아기에게 기증받은 모유를 먹이는 것뿐이었다.

왼쪽: 자동 병입 라인에서 기증 모유를 출하 준비한다. 오른쪽: 실험실 기술자가 저온 살균 처리된 기증 모유가 담긴 병들을 점검하고 건조시키고 있다.
한 간호사가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로터리클럽이 지원하는 모유은행에 연락했고, 요청 지역이 일반적인 서비스 지역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 팀은 즉시 승낙했다. 아울러 냉장 트럭 회사인 '빅 칠'은 냉동 모유를 무료로 운송해 주었다.
코트니는 임신 중에 암 진단을 받고, 아기가 태어난 후 수술을 준비하느라 모유 수유를 할 수 없었던 다른 여성들도 떠올렸다. 모유은행은 그들에게 중요한 첫 며칠 동안 모유를 제공해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은행은 단순히 모유를 제공하는 곳을 넘어 배움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로타리클럽의 도움으로, 모유은행에서 오랫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한 조산사가 수유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임산부를 위한 모유 수유 강좌를 개설했다. 세인트 조지 병원에서 열리는 이 세션은 무료로 진행되며 참가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 모유은행은 크라이스트처치가 있는 캔터베리 지역 전체를 지원하고 있다. 6월 현재, 이 단체는 2,700명 이상의 아기들에게 안전하게 기증된 모유를 제공해 왔다.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지역사회 사람들이 수유와 모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히스케뮐러는 "분유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생기면서, 기증받은 모유가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인식이 크게 확산되었다"라고 들려준다.
모유은행 사업의 핵심은 바로 '사람'이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유를 기증하는 어머니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직접 모유를 전달하기 위해 시간을 내는 의사와 조산사들, 그리고 모든 모유를 꼼꼼히 관리하고, 냉장고에 라벨을 붙이고, 긴급 전화에 응답하는 지역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아마도 그 때문인지, 레나토 칸토스에게 지난 10년간 필리핀에서 해온 활동을 되돌아보는 일은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단순한 보조금 신청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병원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어머니들을 단순히 환자나 제공자가 아닌, 함께하는 동반자로 대하는 문화, 그리고 아무리 작고 아픈 아기라도 보살핌과 투자가 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를 잡는데 기여했다.
칸토스는 "제가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이 사업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기사는 영문잡지인 <로타리> 2025년 11월호에 게재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