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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의 창시자 폴 해리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사망 시에는 로타리재단이 교육을 지원할 수 있도록 화환 대신 추모기부를 해달라는 뜻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장난기 많은 소년이었으며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닌 떠돌이 학생이었다.

왼쪽: 버몬트 사관학교 생도 시절의 폴 해리스
가운데: 폴 해리스의 벌링턴 버몬트 대학 시절
오른쪽: 1891년 아이오와 대학교 법과대학을 갓 졸업한 폴 해리스

폴 해리스가 어린 시절 다녔던 버몬트주 월링포드의 학교. 1933-38년경
해리스는 1868년 위스콘신주 라신에서 태어났다. 3년 후 그의 가족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그는 형 세실(Cecil)과 함께 버몬트주 월링포드에 있는 조부모의 집에서 자라야 했다. 1871년 해리스는 교실이 한 개밖에 없는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이 건물은 오늘날 월링포드 로타리클럽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버몬트주 러틀랜드의 중학교를 거쳐 러들로우의 블랙리버 아카데미에 들어간 그는 몇 주 만에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후에 그는 “학습에 대한 갈증은 뉴잉글랜드 지방 사람의 특성이다. 나는 독서는 양식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독서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천로역정이나 플루타크 영웅전을 꼭 읽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해리스는 버몬트 사관학교를 다니다가 1885년 벌링턴의 버몬트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신입생 풋볼팀에 지원해 팀에 들어갔다. 그러나 1886년 12월 그는 비밀 모임의 회원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3명의 다른 학생들과 제적 처분을 받았다. 그는 후에 자신이 문제가 된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적은 당시로서 마땅한 처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버몬트 대학의 신입생 풋볼팀에서 활동하던 젊은 시절의 폴 해리스. 1885년경. 숫자 ’89은 1889년 졸업반을 의미한다.
“나는 ‘말썽꾸러기 신입생들을 길들이기 위한' 비밀 모임의 조직을 도왔다. 이 비밀 조직에서의 활동은 대학 생활을 더욱 다채롭게 해주었다. 하지만 버컴 총장은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조직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던 네 명을 제적시켰다. 나는 그 중 한 명이었다.”
해리스는 다음해 봄 그의 조부가 고용한 과외 교사와 공부를 했고 1887년 프린스턴 대학에 새롭게 입학했다. 그러나 다시 시작된 대학 생활도 1888년 3월 조부의 사망으로 중단되었다. 해리스는 한 학기를 마치긴 했으나 다음 학년도에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해리스는 학교에 다니는 대신 버몬트주 웨스트 러틀랜드의 셸든 대리석 회사에서 1년간 근무했다. 그 후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하겠다는 조모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조부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기로 했다.
그는 다음 해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법률회사에서 근무했다. 견습생활을 마친 후에는 아이오와 대학에 들어가 1891년 법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후에 버몬트 대학의 문학학사와 법학박사 학위를 포함하여 여러 명예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