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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 역사

그레이스 아이린 만의 편지

1905년 폴 해리스는 친구이자 예전 고용주였던 조지 C. 클락을 만나기 위해 플로리다주 잭슨빌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플로리다주 명문가의 여성을 알게 되었다.

 

  1. 그레이스 아이린 만이 폴 해리스에게 보낸 편지와 편지봉투. 1906년 4월 24일.

  2. 그레이스 아이린 만이 폴 해리스에게 보낸 편지와 편지봉투. 1906년 4월 24일.

그레이스 아이린 만(Grace Irene Mann)과 해리스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고 결혼 이야기도 오고 갈 정도였지만 결국에는 연락이 중단되었다. 이 편지들은 로타리 창시자의 젊은 시절을 새로운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는, 로타리 역사 자료실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들은 편지를 통해 애정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소문을 나누는가 하면 가족, 신학, 철학, 그리고 로타리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해리스는 그녀에게 시카고 로타리클럽 모임을 위한 장소 물색에 대해 말했으며 클럽 정관의 구체적인 내용도 설명했다.

만은 해리스가 들려준 로타리의 이야기에 대해 열의를 담아 답장을 썼다.

“로타리클럽의 헌장과 정관에 대해 쓰신 것을 보고 이에 깊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모든 것을 알려주셨네요. 특히 정관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

이 편지들을 보면 1906년 결혼 문제가 언급되었지만 만의 가족의 반대로 그녀는 해리스와의 결혼을 단념했다. 편지는 1907년 5월에 중단되었다. 해리스는 만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당신의 앞날에 행운을 빕니다. 당신이 훌륭한 여성이 되길 바라며, 그럴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행복할 것입니다. 댈튼에 있는 당신의 친구들에게도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 폴 P. 해리스.”

당시 관습에 따라 해리스는 그녀에게 받은 모든 편지를 돌려주었다. 3년 후 그는 진 톰슨(Jean Thomson)을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만은 존 머렐 벨(John Murrel Bell)과 결혼했고 해리스와 나눈 편지는 언니인 메이 만 제닝스(May Mann Jennings)의 집 다락에 보관해 두었다. 플로리다의 그 집을 허물게 된 1963년까지 보관되어 있던 편지는 만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벨 하이타워(Elizabeth Bell Hightower)에게 전해졌다.

  1. 폴 해리스가 그레이스 아이린 만에게 보낸 편지와 편지봉투. 1906년 4월 7일.

  2. 폴 해리스가 그레이스 아이린 만에게 보낸 편지와 편지봉투. 1906년 4월 7일.

만의 가족은 1997년까지 편지를 보관하다가 이를 국제로타리에 기증했다. 미국 플로리다주 알링턴 로타리클럽의 알리시아 도시-프랭크(Alicia Dorsie-Frank)는 만의 작은 딸인 그레이스 벨 시그레이브스 로저스(Grace Bell Segraves Rogers)와 남북전쟁 역사에 관한 인터뷰를 하다가 편지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도시-프랭크는 만의 딸에게 로타리에 편지를 기부할 것을 제안했다.

만의 가족은 논의를 거친 후 편지와 같은 개인의 기록이 로타리와 역사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고 기증에 동의했다. 그들은 로타리의 역사 자료실에 편지를 둠으로써 역사를 보존하기로 결심했다.

그레이스 아이린 만의 손자이자 플로리다 새라소타 로타리클럽의 회원인 윌리엄 시그레이브스(William Segraves)는 1994년 로타리에 가입했지만 그 당시에는 자신과 로타리 창시자와의 연결 고리를 알지 못했다.

그는 “이 편지를 통해 외할머니의 삶을 알아볼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로타리안으로서 국제로타리와 로타리안들의 위대함에 겸허해지며,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삶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폴 해리스와 그레이스 아이린 만의 이야기는 로타리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유익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