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국가와 문화에서 온 로타리 이스탄불 평화 센터의 1기 펠로우들이 공통의 목표로 하나가 되었다.
이집트, 불가리아, 케냐, 요르단 등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온 로타리의 새내기 평화 펠로우들이 이스탄불의 바체세히르 대학교에 모였다. 비록 출신국은 다르지만 이들은 서로의 공통점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예멘 출신으로 현재 독일에 거주 중인 펠로우인 수아드 압도는 "여기가 아니면 제가 이 세상 또 어디에서 이스라엘 참가자를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며 웃을 수 있을까요? 서로 의견이 다르면 토론이 풍부해지고 시야가 넓어질 수 있어 오히려 좋답니다"라고 말한다.
압도는 로타리가 가장 최근에 개관한 평화 센터인 바체세히르 대학교 오토 앤 프란 월터 로타리 평화 센터의 제1기 펠로우 13명 중 한 명이다. 펠로우들은 지난 2월에 시작된 1년 과정의 전문인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가능한 평화, 분쟁 해결 및 외교에 관한 이론과 실무를 학습한다. 이들은 평화 센터에서 10주간 함께 학습한 후, 각자 설계한 사회 변화 이니셔티브를 실행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스탄불에 신설된 로타리 평화 센터의 제1기 평화 펠로우 13명은 이주민 지원부터 여성 역량 강화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우선순위를 추진하고 있다.
아주 다양한 펠로우들로 구성된 그룹이지만, 이들은 아동 보호, 여성 역량 강화, 그리고 가장 공통적인 관심사인 이주민 지원이라는 유사한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무력 분쟁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이스탄불에서 이들이 보내는 시간은 단순이 학습에 정진하는 시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센터의 윅셀 알페르 에제비트 소장은 "우리 펠로우들은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국가 출신이거나,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하는 분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국가에서 왔습니다. 펠로우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설계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평화적인 수단을 통한 분쟁 해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이 프로그램의 로타리 호스트 지역 코디네이터인 수아트 바이산은 2023년에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의 피해 지역을 현장 방문했고, 펠로우들의 고국 음악을 선보인 콘서트에서 이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파트너를 물색하려는 펠로우들의 굳센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평화 펠로우 한 명만으로는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이들이 정부와 시민 단체들을 설득해 참여하게 한다면 작은 이니셔티브라도 시작해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맞아, 나는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바이산은 설명한다.
오토 앤 프란 월터 로타리 평화 센터의 1기 펠로우 중 다섯 명을 만나 이들의 삶과 추진 중인 사회 변화 이니셔티브,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에 대해 들어 보았다.
수아드 압도, 예멘
수아드 압도가 교육과 여성 인권의 연관성을 처음 깨달은 것은 그녀가 대학생이었을 때였다. 당시 그녀는 예멘의 수도인 사나에 살고 있었는데 이웃의 한 여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했지만 보호자들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저는 제가 살아온 방식이나 부모님께서 저를 키우신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제가 살던 사회의 현실은 전혀 달랐던 거죠"라고 43세의 압도는 말한다.
그러므로 압도가 자신의 삶에서 교육을 우선순위로 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말레이시아, 에티오피아, 독일에서 공부했으며, 경영학 석사 학위뿐 아니라 분쟁 연구 및 관리 전공으로 공공 정책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후자의 전공을 택하게 된 데에는 2010년대 초 '아랍의 봄’ 당시 고국에서 목격한 폭력 사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가 정부 충성파 무장 세력의 표적이 되었던 민주화 시위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이웃들과 특히 여성 주민들의 투표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위험을 피부로 느꼈다.
이 모든 경험은 그녀에게 새로운 질문을 제기했다. "저는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분쟁이 발생했을 때 그 배경에서는 어떠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었습니다"라고 압도는 말한다.
그녀는 장학금을 받아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석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만 그곳에 머무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학 도중인 2014년에 후티 반군이 수도를 장악하면서 예멘은 다시금 정치적 폭력에 휩싸였다. 그녀는 독일에 남아 독일어를 배웠고, 독일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게 되었다.
수아드 압도(앞줄)가 자신이 추진하는 사회 변화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독일 이주민들을 위해 기획한 컴퓨터 기술 워크숍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아드 압도 제공.
압도는 2010년대 중반에 독일로 대거 유입된 이주민들을 지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섰다. 정부 산하 난민 접수 센터에서 통역으로 자원봉사하고 이주 아동을 돌보는 비정부기구에서 근무한 그녀는 국제이주기구에서 본국으로 귀환하는 이주민들을 돕는 팀을 이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관심 분야인 민주주의와 이주를 하나로 결합해, 여성 이주민과 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독일 여성들을 연결하는 사회 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주 여성들은 독일어 기초와 컴퓨터 및 금융 기술을 배우고, 독일 여성들은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저는 '당신에게 히잡을 쓰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와 같이 다소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라고 압도는 말한다. 그녀는 이 여성들이 서로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금세 알아챘다.
"여성은 어디에서나 여성이에요. 출신이 어디든 말이죠"라고 압도는 말한다. "이들은 가족, 아이, 사랑, 일과 같이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른 바체세히르 평화 펠로우들을 만나보세요
무스페라 메푸즈, 파키스탄: 종교 지도자들을 사회 변화에 참여시키고 기후변화로 인한 성별 기반 폭력 문제를 해결한다.
제나-리 스트러그넬, 남아프리카 공화국: 소말리아에서 소셜미디어 및 디지털 대화 촉진 훈련을 통해 평화를 구축한다.
므드 하룬 오르 라시드, 방글라데시: 평화 교육, 지역사회 봉사, 리더십 훈련을 통해 청소년의 역량을 강화한다.
나스린 메몬, 파키스탄: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해결책을 통해 청소년과 여아가 양질의 교육과 멘토십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조혼을 근절한다.
모하무드 아흐메드, 소말리아: 지역사회 대화, 교육 및 심리사회적 지원, 평화 구축 기술을 통해 분쟁의 영향을 받은 청소년 간의 사회적 결속을 다진다.
가브리엘 벨, 미국/이스라엘: 세네갈의 취약한 거리 아동 보호를 위해 자원 및 파트너십을 동원한다.
칼라 조던-윤스, 미국: 분쟁 후 이라크의 청소년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평화 기술 워크숍 및 구조화된 대화를 촉진한다.
하바 셰이다 보두르, 튀르키예: 시리아 및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출신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돕는다.
모라드 알카디, 요르단
모라드 알카디는 사람을 성장시킴으로써 평화를 증진한다. 지역 단체가 보조금 신청서를 작성하도록 돕든, 난민과 지역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하며 교류하는 자리를 마련하든, 그는 언제나 사람들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일깨우고자 노력한다. 그는 '누구도 방관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관객이 직접 공연에 참여하는 형태의 인터랙티브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사회 변화 이니셔티브로 실시함으로써 혐오 발언, 잘못된 정보, 허위 정보 문제에 대처하고자 한다.
"제가 비록 전문 배우는 아니지만, 평화 증진을 주제로 한 인터랙티브 연극 다섯 편에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연극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준 뒤에 관객에게 이렇게 물었죠. '여러분이 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37세인 알카디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런 다음 청중에게 또 질문합니다. '좋아요, 그렇다면 방금 저 사람이 한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시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요?’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사람들이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더 나은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기 시작했어요."
현재 알카디는 자신의 사회 변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젊은 언론인 10명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문해력) 기술을 연마하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 다음, 먼저 교육을 받은 언론인들이 대중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하기 위한 온라인 인식 제고 캠페인과 기타 도구를 개발하도록 도울 계획이다.
그는 "혐오 발언, 허위 정보, 잘못된 정보, 가짜 뉴스 문제를 다루게 될 이 인식 캠페인이 요르단 전역에 널리 확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캠페인은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적 결속과 안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알카디는 과거의 활동에서도 여러 다른 평화 펠로우에게 중요한 문제였던 이주민 유입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고자 노력했고, 요르단에서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온 사람들을 돕기도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그가 요르단 전역에서 100명이 넘는 지역사회 지도자와 경찰관들에게 갈등 해결 교육을 실시한 것이었다. 지역사회 지도자들은 모두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을 이미 경험했었고, 알카디가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경찰을 부르는 것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했다.
"경찰은 늘 이렇게 말했죠.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냥 본국으로 돌려보냅시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결정이 내려졌죠. 시리아인이 요르단인과 갈등에 휘말리면, 그냥 시리아인만 송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상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었어요"라고 알카디는 말합니다.
알카디는 튀르키예로 건너가 시리아 지역사회 단체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활동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여덟 개의 소규모 단체를 대상으로 기금 신청 방법, 장기 계획 수립, 평화 구축 활동 기획에 대해 교육했다. 그중 하나인 "평화를 위한 예술" 프로젝트에서는 아랍인과 쿠르드인 음악가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양측 음악가들은 서로에게 자국의 전통 악기 연주법을 가르쳐주었고, 프로젝트는 공동 콘서트로 막을 내렸다.
알카디는 이러한 감동적인 순간들을 지켜보는 중에도 중요하지만 불편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그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사회 변화 이니셔티브로 실시함으로써 혐오 발언, 잘못된 정보, 허위 정보 문제에 대처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단체들은 자신들이 한 번 개입하면 평화가 곧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지속가능한 평화는 단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과정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시 쿠피 시, 케냐
케냐인 어머니와 소말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시 쿠피 시는 난민들이 케냐 사회에 통합되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시 쿠피 시는 어릴 때부터 난민을 돕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어쩌면 그건 그의 피 속에 흐르는 사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분쟁과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을 피해 탈출한 소말리아 난민들이 그의 고향 키웅가 마을을 비롯한 케냐 북동부 국경 지대에 위치한 지역사회들에 계속 유입되었다. 케냐인 어머니와 소말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시는, 원주민과 난민 양쪽 모두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난민들이 겪는 고통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다섯 살 때 고모가 난민으로 취급받는 걸 봤어요." 40세의 시는 이렇게 회상한다. "고모는 우리와 어울리거나 대화할 수 없었고, 국경 근처의 난민캠프에 갇혀 지냈습니다. 한 번은 제가 밥과 생선을 접시에 담아 고모에게 가져다 주려고 했는데, 누군가가 '이 시간에 오면 안 돼. 내일 와’라고 하면서 저를 막았어요. 이처럼 무관심이 팽배했습니다."
시의 이웃들은 새로 온 난민들이 '아마도 범죄자일 것’이라며 낙인을 찍었지만, 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와 난민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우리는 모두 인간입니다. 한 피를 나누었고, 모두 신이 창조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신념은 그가 소말리아 국경 부근의 지방 정부에서 근무하는 지금도 시험을 받고 있다. 소말리아 무장단체인 알샤바브가 이 지역을 자주 침입하고 있어서 멀리 떨어진 지역사회에 정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의 업무가 불가능할 때도 있다.
게다가 무장단체가 도로에 지뢰를 설치하는 바람에 시는 주민들을 돕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분쟁의 영향으로 인해 전통적인 수렵, 채집 생활을 이어가는 아위르 족 주민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었다. 그는 케냐 군용 헬리콥터를 타고 주민들에게 물자를 전달했고, 타 지역에서 파견된 교사들과 동행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아이들을 태우고 학교로 향하던 군용 차량이 도로변 폭탄을 밟아 폭발해 8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다.
저와 난민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우리는 모두 인간입니다. 한 피를 나누었고, 모두 신이 창조한 존재입니다.
— 시 쿠피 시
이후 시는 배를 빌려서 학생들을 등하교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내었다. 이 계획이 결국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외딴 지역사회를 돕겠다는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들에겐 발전할 권리가 있고,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권리가 있습니다."
시는 여전히 소말리아 난민들이 케냐 사회에 통합되도록 돕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사회 변화 이니셔티브는 키웅가 마을에서 케냐인 원주민과 소말리아인 간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는 두 집단에 서로의 문화를 가르치고 공통점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토지, 식량, 물과 같이 부족한 자원을 둘러싼 갈등을 예방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저는 '난민’이라는 단어가 키웅가의 어휘에서 사라지길 바랍니다. 모든 사람은 '난민'이 아니라 자매, 형제, 사촌으로 불려야 해요."
안젤라 안토노바, 불가리아
안젤라 안토노바는 주변까지 열정으로 물들이는 사람이다. 그녀는 이같은 열정을 발휘해 1995년에 불가리아 최초의 사회복지사 전문 단체를 설립했다. 과거 구 공산권 국가였던 불가리아에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초기 성공에 고무된 안토노바는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불가리아 아동들을 지원하는 사회 변화 프로젝트를 확대할 계획이다.
"사회복지사는 중유럽과 동유럽 국가들, 즉, 구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직업이었어요"라고 58세의 안토노바는 말한다. "평화 구축과 분쟁 예방 등에서 사회복지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대중의 이해를 쌓는 것이 이 직업의 성공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녀의 열정은 또한 2023년에 우크라이나 난민을 돌보는 의료 종사자들에게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의료진들이 환자의 증상을 그대로 느끼기 시작했어요"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돌보고, 끔찍한 소식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대리 트라우마’를 겪게 되기 싶습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익명 전화상담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어, 의료인들이 혹시 모를 낙인에 대한 걱정 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안토노바의 열정이 이번에는 그녀를 이스탄불의 로타리 평화 센터로 이끌었다. "제게 이 기회를 주신 모든 로타리안들께 너무나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아주, 아주 큰 글씨로 적어 주세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부모와 떨어진 불가리아 아동들이 회복탄력성과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자신의 사회 변화 프로젝트를 확대하기 위해 벌써부터 재원을 물색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셀프 육아 아동’ 현상이라고 부릅니다"라고 안토노바를 설명한다. "이 아이들은 홀로 남겨졌어요. 부모가 더 나은 벌이를 찾아 미국이나 독일 등지로 떠나면서 아이들은 부모의 보살핌 없이 남겨지는 거죠.
안토노바는 이렇게 덧붙인다. "부모의 보살핌 없이 자라는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어 범죄나 급진적 활동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고, 아예 그냥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로스트 인 유럽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매일 약 47명의 이주민 아동이 실종된다고 한다.
제게 이 기회를 주신 모든 로타리안들께 너무나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아주, 아주 큰 글씨로 적어 주세요
— 안젤라 안토노바
안토노바의 프로젝트는 이러한 암울한 미래를 막기 위해 매우 단순한 전략을 취한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의 특화 수업을 통해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운다. 동시에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다정한 메시지를 봉투에 담아 보관하는 '사랑의 은행'은 가장 인기있는 수업 활동 중 하나이다.
안토노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150명의 아동이 공식적으로 프로그램을 마쳤고, 미등록 상태로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의 수가 그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한다. 그녀는 추가 재원이나 파트너로 함께 일할 비정부단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이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아이들은 반사회적 행동이나 급진적 성향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다른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폭력을 쓰지 않고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 거죠."
마리암 엘 마스리, 이집트
마리암 엘 마스리는 때로는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사회 변화 이니셔티브로 수단 난민들에게 수공예품 제작과 판매 기술을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던 차에 이와는 전혀 다른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주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대규모 현장 프로젝트를 처음 진행해 보는 엘 마스리는 왓츠앱(WhatsApp) 단톡방을 통해 다른 평화 펠로우들과 활발히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협력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예전에 미디어 분야에서 일했거나, 경력은 없지만 영화 연출에 관심이 있는 젊은 남녀들이 있었습니다"라고 51세의 엘 마스리는 말한다. "그들의 목표는 이집트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일상을 담은 단편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죠. 저는 이 아이디어가 매우 참신하면서도 시의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영화 제작 프로젝트도 병행하기로 했고 실무적인 문제를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한 영화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아주 합리적인 비용으로, 때로는 심지어 무료로 영화 제작법을 가르치는 분이었어요." 엘 마스리는 말한다. "그래서 제가 원래 하려던 프로젝트에 작은 프로젝트가 하나 더 생기게 되었죠."
엘 마스리가 특히 수단 난민 지원을 택한 이유는 이집트와 수단이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단 내전 이후 유입된 수단인이 현재 이집트에서 최대 규모의 난민 집단을 이루고 있고, 수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덧붙인다. "난민 문제는 지금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입니다."
엘 마스리가 그동안 추진한 프로젝트 중에서 현장 업무가 이처럼 많이 필요한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거의 20년간 아랍연맹에서 근무했으며, 잠시 휴직해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대학에서 장학생으로 중동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엘 마스리는 아랍연맹의 군축 및 비확산 부서에서 한동안 근무하며 이란 핵 프로그램 동향을 분석, 보고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정치 상황과, 아프리카-아랍 간 이주 정보 교류를 위한 신규 센터의 설립을 감독하고 있다.
보고서 작성과 회의 참석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그녀에게 이번 사회 변화 프로젝트와 두 번째 프로젝트까지 병행하는 것은 설렘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경험이었다. 그녀는 특히나 활발하고 긍정적인 수아드 압도를 비롯한 동료 평화 펠로우들에게서 많은 조언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조금 막막했어요"라고 엘 마스리는 회상한다. "그래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제 친구 수아드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어요.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합니다. 펠로우들이 모두 참여하는 왓츠앱 톡방에서 아이디어를 주고받습니다."
동료 펠로우들과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엘 마스리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이제 그녀는 수단인 난민 변호사들을 훈련시켜 다른 난민들에게 법적 권리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는 세 번째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쉬울 거야’라고 생각했어요"라고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그렇지만 '기회가 있는데 왜 안 해?’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답니다."
이 스토리는 <로타리> 영문 잡지 2025년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평화 펠로우가 되는 과정
로타리 평화 펠로우는 로타리의 파트너 대학교 중 한 곳에서 평화 및 개발 관련 학문을 공부합니다. 로타리가 평화 펠로우를 선발하는 과정은 매우 엄격합니다. 로타리 회원과 로타랙트 회원이 사회적, 직업적 네트워크, 인근 대학교, 지방자치단체, 비정부기구 등에서 유망한 펠로우십 후보자를 발굴할 수 있습니다. 회원들은 이 추천 양식을 사용해 후보자에게 프로그램 관련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로타리클럽과 로타랙트클럽도 지구 로타리 평화 펠로우십 소위원장 또는 지구 로타리재단 위원장과 협력하여 후보자를 모집하고 추천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후보자 지원 자격과 요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세요.지원자는 평화와 개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초급 또는 중급 경력의 직업인으로, 앞으로 이 분야의 리더로 성장해 영향력을 발휘할 잠재력이 있는 인재여야 합니다.
후보자는 온라인 신청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로타리에 대해 더 알아보고 지원 절차에 대한 도움을 받으려면 클럽 찾기 도구를 사용해 인근 지역 또는 온라인 클럽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지원자는 영어에 능숙하고 학사 학위를 소지해야 하며 기타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국제로타리 직원, 전문 연수를 받은 로타리 회원 및 동창, 파트너 대학교들이 펠로우십 지원서를 심사합니다. 심사팀은 관련 경험, 평화와 개발에 대한 헌신, 리더십과 잠재적 영향력, 학업 성취도, 그 밖의 필요한 자질을 갖춘 적격 후보자를 선발합니다. 로타리 평화 센터 위원회 위원들과 파트너 대학교들이 최종 후보자를 선정한 후 로타리재단 이사회에 추천해 승인을 받습니다.
펠로우십으로 로타리 평화 센터의 등록금 및 수업료, 숙식비, 왕복 항공료, 인턴십 및 기타 실습 비용이 지원됩니다.
로타리 평화 센터는 지금까지 1,800명 이상의 펠로우를 배출했으며, 이들은 현재 140개국 이상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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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환경의 날 특집] 로타리 평화 센터에서 배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