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리가 일깨워준 꿈... 빈민가 청소년에서 젊은 창업자로

우리 가족은 베트남에서 이주했습니다. 자식들에게 공산주의 치하에서는 바랄 수 없는 것들을 우리에게 누리게 하려는 아버지의 결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빈민가에 자리를 잡게되었습니다. 저는 폭력과 빈곤에 찌들은, 미국 최고 수준의 중퇴율로 악명이 높은 프레몬트 하이스쿨에 진학했습니다.  

길가에 자리한 우리 집에서는 매일 밤마다 총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몇 명의 로타리안들이 우리 클래스를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우리들에게 오클랜드 로타리클럽이 실시하는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이는 사흘 동안 실시되는 캠프로서 학생들의 비즈니스적인 소양과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산타크루즈 산속에서 또래들과 함께 비즈니스 계획을 짜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별로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비즈니스란 장의사, 술가게, 그리고 마약상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는 저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AK-47 라이플과 무차별 총격이 아닌, 플라톤과 셰익스피어에 대해 말하는 10대들을 만났습니다. '기업가(entrepreneur)'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들어 본 곳도 그 캠프였습니다. 저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온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저는 비로소 제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례연구를 하며 자신의 비즈니스 계획을 작성할 때, 저는 비로소 공격용 자동소총이나 감옥과 관련되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동료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한 후 창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저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 꿈을 이루려면 남들보다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꿈을 갖게 된 것, 즉 성취를 위한 동기 부여야 말로 제가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를 통해 얻게 된 가장 값진 교훈이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버텨온 나날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저는 대학생에게 수여되는 거의 모든 장학금을 신청했습니다. 저는 20곳에 신청서를 넣었는데, 19곳으로부터 미국 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습니다. 딱 한 군데서만 저를 수락하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 곳이 바로 오클랜드 로타리클럽이었습니다. 로타리안들은 저와 제 가족을 만나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어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많은 다른 후보자들이 있었음을 압니다. 그들이 제게 5,000달러의 장학금을 수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저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 장학금과 정부의 재정 보조에 힘입어 저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데이비스)에서 저는 장학금으로 방세와 책값을 지불했습니다. 첫 3년 동안 장학금 덕분에 일을 하지 않고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오클랜드 클럽의 카운슬러인 테리 터너는 언제나 제게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솔직하게 "고전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프레몬트 하이스쿨을 졸업한 저로서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테리는 언제나 제게 좋은 조언을 들려 주었고, 저는 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저는 다른 3명의 프레몬트 고교 졸엄생들과 함께 대학 생활을 시작했는데, 2학기가 되자 저 혼자 남았습니다.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가 제 미래를 향한 시동을 걸게 해주었다면, 로타리 장학금은 저를 계속해서 달릴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2004년 Novateck PC를 창업할 때까지 수년 동안 작은 기업들에서 일했습니다. 창업 후에는 바로 오클랜드 로타리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제 첫 번째 고객들 가운데에는 클럽 회원들도 계셨습니다. 그동안 혼자 꾸려나가던 Novateck은 이제 3명의 직원을 두었습니다. 저도 아내와 두 딸을 둔 가장이 되었습니다.  

지난 해 저는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베트남을 방문했습니다. 30년 전에 떠나왔던 조그만 어촌 마을은 이제 분주한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오클랜드 집도 다른 것으로 변했고, 친구들과 뛰놀았던 농구 코트도 아파트단지로 변했습니다. 오클랜드 클럽의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만이 30년의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30주년이 되는 올해에도 로타리안들은 고등학교 3학년생들을 산타크루즈 산속으로 데려가 자신들의미래를 재단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저는 지난 7년 동안 이 인스티튜트의 활동을 도와 왔으며, 이제는 그 실시를 주관하는 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캠프로 인해 또 다른 10대들이 생각을 바꾸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갖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로타리안 지 2012년 9월호에 게재되었던 내용입니다.  

4-Nov-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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