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학교 돕는 고액 기부자
By Bill Benter (as told to Stephen Yafa)
국제로타리 뉴스 -- 2012년 2월 6일
홍콩 코울룬 노스 클럽과 마카우 클럽의 도움으로 신축된 교사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국 듀안성의 학생들 Photo courtesy Bill Benter
내 가 로타리에 가입한 것은 40세 무렵이었다. 시기는 완벽했다. 나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로서 커리어를 구축해 가던 중이었다.
나는 경마 게임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개발 중이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각 경주말마다 70개를 변수를 부여하여, 각 변수마다 데이터를 넣으면 승률을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의 상대는 전적으로 컴퓨터 스크린이었다. 우리는 고객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나는 고향인 피츠버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홍콩에 살고 있었다. 나의 목표는 각 경주말마다 과거 성적과 트랙 상황 등을 바탕으로 승률을 알아내어 베팅하는 것이었고, 이는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동시에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는 것이었다.
로타리와의 인연은 내 비즈니스 변호사인 길버트 콜린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전에도 두 번이나 나를 코울룬 노스 RC클럽에 초대해 주었으며, 마침내 나는 세 번째 초대에 응하게 되었다. 나는 기질적으로 단체 생활에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었으나, 나 자신도 모르게 회원이 되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
로타리안들은 모든 직업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한다. 나는 홍콩에 대해 그 때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보다 회원이 되고 나서 1년 동안 홍콩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지금와서 되돌아 보면 내가 클럽봉사 활동에 깊이 관여하게 된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
무너져내린 학교들
나는 숫자를 좋아하며, 그 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로타리를 통해 발견한 것이지만, 그 재능을 내가 신봉하는 가치를 위해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클럽의 국제봉사 디렉터로서, 나는 다른 나라의 클럽들과 연락하고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코울룬 노스 RC의 브루스 스티슨 전 회장은 마카우 RC의 사이-홍 초이 전 회장과 오랜 친분을 맺고 있었으며, 1999년도에 중국 동남부의 듀안성(Du'an County)을 함께 방문했었다. 그리고 이곳 학교의 열악한 환경 – 지붕과 벽이 무너져 내리고, 학생들은 책상이나 걸상도 없이 바닥에서 공부를 해야하는 실정– 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마카우 클럽은 이들 학교를 돕기 원했으나 기금이 부족해, 우리가 힘을 보태기로 했다.
당초 나는 우리가 모금한 돈이 중국의 관료주의를 뚫고 당초의 취지대로 전달될 가능성을 점치기란 도박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듀안 성의 관리들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관리들도 우리의 진심을 알게되면서 성실하고 정직해졌으며, 우리의 도움에 감사하게 되었다.
정부는 우리가 교사를 신축하는 데 필요한 기금 6만 달러 중 절반을 부담할 수 있으면, 나머지 절반을 상응키로 하였다. 이는 마치 농구의 슬램-덩크와 같이 기쁜 일이었다. 다행히 사업이 성공을 거두어 나는 우리가 모금키로 한 액수의 상당 부분을 기부할 수 있었다.
코울룬 노스 RC는 마카우 RC와 팀을 이루어 첫 3개 교사를 신축했으며, 그 이후 우리 지구의 클럽들은 더 많은 기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모금된 돈이 벽돌과 모타르에 쓰일 때마다 우리는 그대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봉사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중국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중국이 매우 전제주의적이고, 심지어 야만적인 곳이라 생각했었다.
괄목할 만한 변화
그러나 나와 내 동료들은 듀안성의 교사 신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학교의 교장에게 학생들에게 체벌을 주는지 물어 보았다. "학생들을 때린다고요?" 교장은 내 질문에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그에 의하면 교사나 교직원들에 의한 체벌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신네 나라에서는 그렇게 하느나?"고 되물었다. 그는 우리가 그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 없어했다. 그 때까지 내가 갖고 있던 다른 여러 궁금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첫 번째 프로젝트였던 교사 신축 프로젝트가 완료된 지 11년이 지났고, 듀안성은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2008년, 우리가 그 지역을 다시 방문했을 때, 학생들은 더 이상 쭈뼛거리며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핸드폰으로 우리의 사진을 찍기 바빴다. 놀랍게 발전된 모습이었다. 우리가 신축한 교사들은 주변의 높은 빌딩에 둘러쌓여 오히려 작아 보였다.
내가 이렇게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로타리클럽에서 비비안을 만나 – 그녀는 페닌슐라 선라이즈 클럽 전 회장이었다 – 53세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는 결코 이런 가능성에 베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문제점은 있다. 설사 내가 개발한 것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컴퓨터는 내가 로타리를 통해 경험한 신나는 모험이나, 그에 따른 개인적 성취감에 대해서는 결코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 나는 로타리재단의 사명을 믿기 때문에 기부하는 것이다.
로타리안 지 2011년 11월 호에 게재된 전체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