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리,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 붕괴의 현장에
Matthias Schütt의 기사에서 발췌
국제로타리 뉴스 -- 2009년 11월 18일
통일을 앞둔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전부터 로타리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다.
사진 제공: Rotary Magazin
1989년 11월, 서베를린 힐튼 호텔 로비에서는 국제연수회에 참여한 수백명의 로타리안들이 호스트 환대 행사에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택시는 한 대도 도착하지 않았다.
베를린-스프리 로타리클럽의 피터 로렌즈 씨는 호텔 직원이 나와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고 회고한다:
“택시가 오지 않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동독에서 온 수천 명의 방문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에 택시가 호텔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이 손님들을 28년 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이해해 주십시오. 이제 브란덴브루그 게이트와 장벽이 활짝 열렸습니다.”
20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는 유럽의 정치적 변화의 시작이었을 뿐 아니라 로타리에서는 새로운 시대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오늘날 동 유럽 전체에서 로타리의 재 탄생을 알리는 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독일 로타리안들은 독일의 통일과 로타리에 미칠 영향에 관해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들은 장벽이 철거되는 도중에도 여러가지 활동을 시작하였다. 베를린-티에르가르텐 로타리클럽 회원들은 차와 커피를 준비하고 동 베를린에서 오는 방문객들을 환영하였다. 로타리안들은 또한 동독 지도에는 서 베를린 거리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감안하여 서베를린 시내 지도를 기부하기도 하였다. 한 회원은 방문객들이 커피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지도는 매우 인기였다고 전한다.
그 후 서독 로타리안들은 예전에 로타리클럽이 존재했던 동독의 도시에 로타리클럽을 재창립하는 계획을 세웠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지구총재들은 동독 뿐아니라 체코,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으로 로타리를 확장해 나갈 계획을 논의하고, 동독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이 세미나들은 자매도시 프로그램 또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로타리클럽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동독 주민들에게 봉사 클럽이란 자체가 생소했지만, 독일 통일 1년 만에 49개의 신생클럽이 창립되었다.
1990년 3월, 베를린 장벽 붕괴 시 서베를린 국제연수회에 참가하고 있던 휴 아처 당시 RI 회장은 크렘린을 방문하여 소련 정부 인사들과 봉사 단체 조직에 관해 논의하였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모스코 로타리클럽이 창립되었다.
1995년 가을까지 독일에서는 91개의 신생클럽이 창립되었으며, 로타리 운동은 동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갔다.
오스트리아 및 독일 공식 로타리 잡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