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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는 소아마비 고통없게..." 전 지구총재 호소


 
 

조  M. 휘트모어 전 총재 Photo courtesy Whittemore

조 M. 휘트모어 전 총재(미국, 조지아, 하트웰 로타리클럽)에게는 소아마비 박멸 노력이 단순한 로타리 2억 달러 챌린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휘트모어 전 총재에게 소아마비는 개인적인 아픔이었다.

1941년, 당시 6세 난 소년이었던 휘트모어는 휠체어에 몸을 의탁한 채 루즈벨트 웜 스프링즈 재활원에 입원했다. 제 32대 미국 대통령이자 가장 유명한 소아마비 환자였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이름을 따 명명된 이 시설은 그의 고향마을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걸리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후 그는 일곱 번의 여름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그 때마다 2번씩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휘트모어 전 총재는 "당시만 해도 소아마비 수술은 대단히 큰 일이었고, 회복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그에 따르면, 수술 때마다 사흘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했으며, 2주는 병실 침대에 꼼짝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그 후 2주 동안은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2-4주 동안은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렇듯 길고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거친 끝에 그는 마침내 13살의 나이에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됐다.  고교 시절 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회계사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고, 테니스는 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되었다. 1962년 로타리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7년 지구총재에 선출되었으며, 1992년에는 로타리재단 특별 공로상을 수상했다.  

소아마비의 악몽 

휘트모어 전 총재는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로타리재단 지역 코디네이터(RRFC) 연수회에서 행한 강연에서 자신은 지난 세월 동안 소아마비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했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걸음이 약간 불편한 그는 "그 누구도 나를 소아마비 희생자로 여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35세 나던 해, 소아마비와 관련된 척추 부상으로 다리에 다시 교정기를 착용해야 했을 때에도 그는 장애자 주차허가증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는 웜 스프링즈(이 곳에 소아마비 명예의 전당이 세워져 있다)의 스탭들로부터 자신들을 소아마비 희생자로 여기지 말도록 교육받았다고 밝혔다. 재활 교육 중 누군가가 넘어져도 스탭들은 본인이 스스로 일어나도록 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필요할 때 그들이 와서 도와줄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당장 그들이 달려와 우리를 일으켜 세우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도 알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루즈벨트 전 대통령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 재활원에 입원한 원생들은 그로부터 많은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면 우리도 일어나 걸어서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걸어서 나갈 수 없다면 우리 스스로 휠체어를 움직여서라도 문을 열고 나갈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1986년, 그는 자신이 그토록 떨쳐 버리고자 했던 소아마비와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또다른 전환점

휘트모어 씨는 로타리가 새로운 폴리오플러스 프로그램을 위한 첫 번째 모금 캠페인을 벌이던 해에 6910 지구총재를 지냈다.  많은 로타리안들처럼 그도  1986년 라스베가스 국제대회에서 이 캠페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당시 그는 차기총재직의 사임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그는 "평생을 소아마비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다시 그 악몽을 떠올리는 것은 끔찍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그는 폴리오플러스가 세상 어린이들에게 주는 희망을 생각했고, 최선을 다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1987-88년도에 그의 지구는 소아마비 박멸을 위해 52만5,000달러를 모금했다. 활동 역사 4년에, 3만 달러 이상을 모금해 본 전례가 없는 지구로서는 믿을 수 없는 성과였다. 일선 회원들에게 직접 다가가기로 한 휘트모어 전 총재는 클럽 회장들과 힘을 합하여 회원 설득에 나섰다. 그 결과, 그 해 말 6910지구 회원들의 80퍼센트가 로타리재단 후원회 회원이나 폴 해리스 휄로우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그의 지구는 수 년 동안  폴리오플러스 모금의 선두 주자 역할을 해 왔다. 그는 1990년에 로타리재단 공로 표창장을, 1992년에는 특별 공로상을 수상했다.

연합 감리교회 평신도 리더이기도 한 그는 자신이 로타리의 소아마비 박멸 노력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을 개인적 특권으로 생각한다. 그는 "오늘날의 로타리안들은 이 위업을 완성할 기회를 갖고 있다"면서 "소아마비 박멸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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