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서 귀국한 전 로타리 장학생, 평화 증진 노력 계속 원해
By Susie Ma
로타리안 지 -- 2012년 11월 호
전 로타리 장학생 제스 설리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던 당시의 모습.
Photo courtesy Jesse Sullivan
제 스 설리번은 당초 의과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그러던 그가 2007-08 로타리 친선사절 장학생으로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글로벌 거버넌스와 외교학을 공부한 뒤, 전혀 다른 행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는 결코 뒤돌아 보지 않았다. 그는 미하원 캠페인 정책 보좌관이 되었으며, 아이티 난민들을 위해 일했고, 미국방성 요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현재 국제 옥스포드 e-클럽 회원으로 로타리와의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로타리안 지(이하 로): 귀하의 경험은 세계 전역에 걸쳐 있다. 시작은 어디였나?
설리반: 나는 미국, 일리노이 피터스버그라고 하는 인구 2,300명의 작은 마을 출신이다. 미주리, 세이트 루이스 대학교에 진학해 보니, 기숙사가 고향 마을의 절반에 해당될만큼 컸다. 나는 도시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보았고, 도시민들의 어려움도 느꼈다. 나는 건강보험이 없는 이민자들을 위한 클리닉에서 일했으며, 미국에 막 정착한 아프가니스탄 가정을 도왔다. 그 후 미국무성을 통한 교환 프로그램으로 엘살바도르에서 6개월 동안 활동했는데, 아 과정에서 의료 문제와 마찬가지로 영양실조도 사회경제적 이슈의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의과대학원 진학을 보류하게 되었고, 친선사절 장학생을 마친 후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는가?
설리반: 국방성에서 군사 분석관으로 일했다. 구체적으로 내 역할은 아프간 국민들과 미군 사이의 이해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었다. 이 일은 옥스포드에서 습득한 경험을 활용하는 데 적격이었다. 우리는 반군과 연합군의 전투가 치열한 헬만드 지역에 들어갔다. 나는 마을로 들어가 종교 지도자, 민병대원들, 농부들을 인터뷰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폭발물로 아들이 죽는 것을 눈 앞에서 목격한 아버지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그 지역만이라도 분쟁을 끝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내 역할은 지역 경찰력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주민들은 생명을 잃을까 두려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하였다. 6개월 후에 그 곳을 다시 찾았을 때, 나는 다시 문을 연 학교를 방문해 보았다. 그것은 작은 승리에 불과했지만, 그 승리를 이루는 데 일부라도 기여를 했다 생각하니 무척이나 보람을 느꼈다.
로: 이제 미국에 돌아와서 할 일은 무엇인가?
설리번: 로타리 경험을 통해서 나는 비즈니스가 사회적 가치 창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배웠다. 아이티의 경우 실업률이 극심하다. 사람들에게는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비즈니스에 대해 좀 더 배우고, 개발도상국들을 돕는 좀 더 총체적인 접근 방법을 찾고 싶다.
미국에서 우리는 아주 독특한 입장에 있다. 우리는 글로벌 정치 시스템의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를 가동시키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개발도상국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로: 당신의 요청에 따라 헬만드 지역 사령부(남서부)는 5월 28일을 국제로타리의 날로 기념하여 로타리 기를 게양했다고 하는데, 이는 무슨 이유에서인가?
설리번: 헬만드 지역에서 재개교한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얼마나 즐거워 하는지를 보았다. 이를 계기로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로타리가 내 인생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 로타리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를 보냈다. 로타리안들은 그들의 활동에 걸맞은 존경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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