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지 다나카 2012-13년 RI 회장을 소개합니다
By John Rezek
국제로타리 뉴스 -- 2012년 7월 10일
로타리 평화 펠로우들과 국제기독교대학교 캠퍼스를 산책하는 다나카 회장. 사진/Alyce Henson.
지난 한 해 동안, 국제로타리 세계본부의 직원들은 엘리베이터와 카페테리아, 로비, 그리고 18층의 한 모퉁이에서 흰 머리의 신사 한 분을 종종 보아 왔다. 흠 잡을 데 없는 매너를 지닌 그는, 마주칠 때면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운 채 부드러운 웃음 소리와 함께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넨다.
로타리클럽 주회에서 박수치고 있는 다나카 회장.
사진/Alyce Henson
그는 언제나 통역사 에이코 테라오씨와 함께 단아한 걸음걸이로 우리를 지나치는데, 그 특유의 밝은 표정으로는 머리 속에 어떠한 고민이 자리잡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십중팔구 그것은 로타리에 관한 고민일 것이다. 다나카 회장의 말을 빌자면, 그가 로타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있을 때는 잘 때와 식사할 때 뿐이다. 그것도, 다른 로타리안들과 식사하고 있지 않을 때에 한해서이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매 순간 로타리 생각 뿐”이라는 것이 그의 농담 섞인 설명이다.
영부인 교오코 여사에게 묻는다면 그를 “로타리 광”으로 묘사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야시오 로타리클럽에 몸담아 온 37년의 세월 동안, 지구총재, 연수 리더, 지역 로타리재단 코디네이터, 소아마비박멸 주창 태스크포스 일원, 미래 비전 위원회 위원, 2009년 버밍햄 국제대회 위원장, 일본 영구기금 위원장, RI 이사, 로타리재단 관리위원 등 지위의 높낮이를 막론하고 그가 역임하지 않은 로타리 직책이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모든 여정을 포함해 49년의 결혼 생활 동안, 교오코 여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나카 회장을 내조해 왔다. 둘은 함께 폴 해리스 휄로우이자 로타리 베네훽터 및 고액 기부자 표창 수상자이다. 비록 영어를 구사하지는 않지만, 교오코 여사는 몸짓, 손짓만으로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재주를 지닌,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다나카 회장은 말한다.
내외는 다나카 회장의 도매업계 사업에 있어서도 항상 서로에게 힘이 되어왔다. 일정이 겹쳐 미팅에 참석할 수 없을 때엔 교오코 여사가 대신 참석하는 일도 있다. 만일 출장으로 집을 떠나 있게 되면, 다나카 회장은 매일 부인에게 전화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다나카 회장 부부는 장성한 1남2녀의 자녀를 두었다. 딸들 중 한 명은 말레이시아에, 나머지 한 명과 아들은 일본에 살고 있으며, 곧 일곱 명째 손주가 태어날 예정이다. 가족 구성원들은 매년 야시오 시에 위치한 다나카 회장 부부의 집에 모여 설 명절을 지낸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은 배우자를 위해 배려하고 인내하는 것”이라고 다나카 회장은 말한다. “항상 참을성 있게 대해주는 아내를 만난 것이 나로서는 큰 행운이다. 일본 남자들의 경우, 화나고 답답할 때 이를 표출할 수 있는 자유가 여자들보다 많은 편이다. 그래서, 내 아내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인내심을 갖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다나카 회장은 이같은 인내심을 노련함에서 오는 효율성과 적절히 조화시킨다. 일본 가정용지 제조업자 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직설적, 비유적 의미 모두에서 “책상을 깨끗이”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서신 교환은 가능한 한 이메일로 하며, 꼭 필요한 이메일이 아니면 확인 후 수신함에서 삭제한다. “나는 무엇이든 서둘러 하는 성격이다. 할 일이 쌓이는 것을 싫어해서, 빨리빨리 처리하고 다음 일로 넘어가곤 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와 반면, 다나카 회장 자택에는 일기와 사업 관련 문서들이 길이 3미터가 넘는 대형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 쌓이도록 놔두지 않는 것이 그의 신조이다. 용도가 다한 문서들은 주기적으로 대량 폐기처분한다. 로타리 관련 문서의 경우, 야시오 클럽으로 옮겨 보관하기도 한다.
해외로 출장을 다닐 때 다나카 회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아내의 요리이다. 교오코 여사가 손수 만든 요리는 그 누구의 것보다 그의 입맛에 잘 맞는다. 일본 요리를 가장 선호하는 편이지만, 타지에서 먹는 일본 요리는 아무래도 고국의 맛에 미치지 못한다고 그는 말한다. 외국의 식당에서는 라면 면발의 맛도 다르고, 정말 만족스러운 스키야키를 만나기도 힘들다. 그런 이유에서, 여행 중에는 오히려 외국 요리를 찾게 된다고 한다. 한국식 갈비나 불고기의 맛을 특히 즐긴다는 그의 옆에서, 통역사 테라오씨는 토마토가 들어간 “빨간 소스” 스파게티도 그의 입맛을 돋굴 수 있다고 덧붙인다. 빨간 소스가 아니면 아예 소스 없이 만들어진 파스타를 즐기는데, “치즈가 과하게 들어간” 음식을 탐탁치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 사회에서 초밥집이 성행하고 일본 요리가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것에 대해, 다나카 회장은 일본 요리 자체에 대한 애호심보다는 미국인들의 건강에 대한 우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진중한 다나카 회장이라고 해서 항상 “비즈니스 모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릴랙스 모드”일 때에도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기질에는 변함이 없다. 한 번은 가라오케에서 쉬지 않고 54곡을 연속으로 불러 개인 기록을 세운 적도 있다. 그는 수줍어하면서도 그날을 자랑스럽게 떠올린다. 자신의 말로는 이제 두 번 다시 그럴 만한 스태미나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견을 제시할 듯도 하다.
바로 몇 년 전만 해도, 다나카 회장은 한 로타리안 친구와 함께 동네 거리 청소에 나섰었다. 잡초를 뽑고, 쓰레기를 줍고, 그렇게 모인 쓰레기를 손수레로 옮기고… 어쩌다 죽은 고양이나 강아지를 발견하면 그것까지 집어다 버렸다. 그때를 기억하며 다나카 회장은, “전에는 정말 더러운 곳들이 눈에 많이 띄었었다. 그런데, 내가 하루 종일 자기들의 집 앞을 청소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결국 나와서 함께 청소를 하거나 아예 청소가 필요 없도록 자기 집 앞을 청결히 유지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두 사람만의 작업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금새 주변 로타리클럽들의 정기 프로젝트로까지 발전하여 한 달에 한 번 여러 동네에 걸쳐 실시되기 시작하였고, 종국엔 지역사회 전체로 확대되어 야시오 전역을 59개 단체가 매년 두 번씩 청소하는 대대적인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젠 야시오 시 시장도 참여할 정도이다.
다나카 회장은 야시오 로타리클럽의 활동을 통해 “아무리 조촐한 노력이라도 남을 돕는 것은 평화 증진에 일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의미에서 ‘평화’를 이룩하는 일이 로타리의 실질적이자 실현가능한 목표”라고 말한다. 로타리 평화 휄로우십 프로그램 내에 사쿠지 다나카 기증 장학금을 설립하기도 한 그는, 지난 1월에 “섬김으로 평화를”이라는 문구를 그의 RI 회장 표어로 채택하였다. “평화는 국제조약이나 정부 활동, 또는 영웅적인 분투를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손으로, 매일 작고 간단한 것에서부터 찾아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라고 그는 역설한다.
“평화와 분쟁 해결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사회의 최소 단위가 가족이니 당연히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으면, 가정 생활의 의미를 되새길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또 그같은 평화를 실천을 통해 주변에 퍼뜨릴 수 있게 된다. 가정의 평화는 세상 모두를 위한 평화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부연 설명이다.
다나카 회장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일본의 전통 철학이 로타리의 사상인 “초아의 봉사”와 맞닿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2011년 3월 쓰나미와 지진이 일본을 휩쓸고 지나간 후 활발한 재건 노력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세계관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복구 과정을 통해 개개인들이 발휘한 협동 정신은 일본을 넘어 전세계에 교훈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로타리는 이러한 교훈을 널리 전파하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로타리 평화 센터를 통한 신세대 교육이 특히 그러하다. 사회적 책임을 지고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힘쓰게 될 이들은 바로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