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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타리 봉사에 한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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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한 RI 이사는 문해력 증진을 위한 교사 연수 프로젝트를 위해 온두라스를 7회나 방문했다. 사진은 보육원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신겨주며 즐거워하는 한 이사.  Photo courtesy Frederick Hahn

로타리 생활 36년째인 프레데릭 한 Jr. RI 이사의 로타리 체험은 실로 다채롭다. 그는 러시아와 인도로 공수되는 의약품을 배포했고, 미주리에서 최초의 라일라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전국 면역의 날(NID)에 어린이들에게 직접 백신을 투여하는가 하면, 로타리 폴리오플러스 프로그램에서 주요 직책을 맡아 활동했다. 이러한 활약 중에 그는 테레사 수녀와 소아마비 구강 백신 발명자인 앨버트 사빈 박사를 만날 기회도 가졌다. 

어느 때가 가장 인상깊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로타리는 여행과 같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이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로타리 활동도 마찬가지다." 

한 이사는 7개 대륙의 75개국 이상을 방문했다. 남극대륙은 부인 마지 여사와의 결혼 50주년 기념으로 방문한 7번째 대륙이다.   

로타리재단 동창이기도 한 그는 2000년, 연구단교환 팀을 이끌고 터키를 방문했었다. 그가 로타리에 가입한 것은 1973년이지만 진정한 로타리안이 된 것은 1985년, 캔사스 시티에서 개최된 RI 국제대회에서 앨버트 사빈 박사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인디펜던스 로타리클럽 차기회장으로 국제대회에 참석 중이었다.    

한 이사는 “나는 사빈 박사와 악수를 나눌 기회를 가졌고,  소아마비에 대한 그의 깊은 우려를 알게 됐다"면서 "의사인 나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고, 이를 계기로 나는 로타리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밝혔다.  

사빈 박사를 만난 후 그는 소아마비 박멸을 위한 적극적인 기부자로, 옹호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폴리오플러스 파트너 존 코디네이터로 수년 동안 봉사했으며,  폴리오플러스 위원회 미 서부지역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로타리재단의 고액 기부자로서 부인 마지여사와 함께 아치 C. 클럼프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1997년, 에티오피아 전국 면역의 날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던 중, 아디스 아바바에서 개최된 회장 평화 컨퍼런스에 참석했으며, 이 때 아프리카 여성들을 위한 의료 활동을 벌이던 캐더린 햄린 박사를 만났다. 아프리카 여성들의 부인과 질환을 퇴치하는 데 헌신하던 햄린 박사는 이듬해 로타리가 수여하는 국제봉사상을 받았다. 그는 햄린 박사와의 만남을 가리켜 "우리 부부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이라고 표현했다.   

지구총재로 재직하던 1992-93년에 러시아, 피터스버그의 병원에 의료용품을 지원할 목적으로 하트 투 하트 인터내셔널과 협조하여 상응보조금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년 후에 그는 인도, 콜카타에 소재한 테레사 수녀의 집에 의료용품을 공수할 프로젝트의 공동 위원장을 맡았으며, 그 해 말에는 문해력 증진을 위한 교사 연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온두라스를 일곱번째로 방문했다. 이 두 프로젝트는 모두 로타리재단 상응보조금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05년, 35년 동안의 이비인후과 의사로서의 활동을 마치고 은퇴했다.  미주리주 의료인 협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미주리주 의료재단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도 여러 봉사 단체에 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나는 RI 모토인 '초아의 봉사'와 로타리재단의 모토인 '인류애의 실천'을 신념으로 갖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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