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적 평화 위한 기초 작업
By Dan Nixon
국제로타리 뉴스-- 2009년 11월 4일
일본, 국제 기독교 대학의 로타리 세계 평화 휄로우 시절의 오소우 씨(왼쪽에서 세 번째). 그는 자신에게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준 국제로타리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Photo courtesy of Kouame Remi Oussou
코트디부아르 내전으로 조국이 분열되어 동포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본 쿠아미 레미 오소우 씨는 남은 생을 평화와 분쟁 해결에 바칠 것을 다짐했다.
지난 2002년에 발발한 코트디부아르 내전은 2004년에 끝이 났지만 그의 조국은 둘로 갈라졌다.
오소우 씨는 현재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의 유엔 개발 프로그램(UNDP)에 소속되어 동 지역의 무장 해제와 주민 귀환, 사회적 통합을 모니터, 평가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일은 2007년 영구 평화안이 발효되기 전까지 주기적으로 유혈 분쟁 사태가 일어났던 이 지역의 평화 정착과 사회 안정에 기여한다.
"이러한 일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이라고 지적한 오소우 씨는 "무장 해제와 주민 귀환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고 나서 그 후에 서서히 사회 통합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소아마비 생존자로는 최초의 로타리 세계 평화 휄로우이다.
그는 "이러한 일을 맡은 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경제학적 연구"라고 말한다.
오소우 씨는 "내가 맡은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과거의 전투 요원들이 무장 해제를 당하고 고향으로 복귀한 후 어떻게 삶을 영위해 나갈 지를 미리 연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국어 외에도 영어, 불어,독일어, 스페인어에 능통한 그는 "우리는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정부, 군부, 그리고 UNDP 간의 상충하는 이해 속에서 끊임없이 합의점을 모색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한 살인가 두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다는 말을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장애자든 정상인이든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는 2007-09년에 일본, 동경에 소재한 국제 기독교 대학교(ICU)에서 로타리 세계 평화 휄로우 과정을 마치고 히로시마에 소재한 유엔 인스티튜트에서 인턴십을 한 것이 현재의 직책을 수행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됐다고 들려준다. 인턴십을 하면서 그는 핵 에너지 개발에 관해 동 인스티튜트와 유네스코 간의 합동 컨퍼런스 준비를 돕고 동 컨퍼런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아프리카와 세계 평화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와 발표의 기회를 준 국제로타리와 ICU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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