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서 공부할 장학생 추천받아
By Ryan Hyland
국제로타리 뉴스 -- 2009년 9월 3일
케니 그라이딘저 씨 부부(왼쪽)가 1962년 LA 국제대회에 도착, 인사를 받고 있다.
Rotary Images
매년, 모쉬 그라이딘저 지구 장학기금(Moshe Greidinger District Scholarship Fund)은 전세계 로타리클럽과 지구를 대상으로 이스라엘에서 공부할 장학생(대학원 과정) 추천을 받는다.
제 2490지구가 관리하는 이 기금은 1967년, 로타리안 케니 그라이딘저 씨가 역시 로타리안이었던 부친을 기려 설립하였다. 그의 가족은 2차 대전 중 부친의 로타리 커넥션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난 경험을 갖고 있다.
그의 가족이 17일간에 걸친 험난한 항해 끝에 남아공, 더반에 도착한 것은 1941년, 그의 나이 17세 때였다. 당시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자국 국민들에게 긴급 소개령을 내린 상태였고, 1930년대 초 팔레스타리인으로 이주했던 그의 가족들도 대피행렬에 합류했다.
그러나 남아공에 도착한 그의가족들은 뜻밖에도 입국을 거부당했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두 조카가 영국시민이 아니란 이유 때문이었다. 17일간에 걸친 악전고투 끝에 도착한 땅에서 그대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그의 부친 모쉬 씨는 이민국 디렉터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팔레스타인, 자파-텔아비브 로타리클럽 창립회원이었던 그의 부친은 그날 로타리 핀을 옷깃에 달고 있었고, 이민국 디렉터 역시 로타리 핀을 부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내 막역한 지기처럼 되었고, 그는 모쉬 씨 가족의 입국을 허락하여 주었다. 그는 나중에 두 조카들이 영국 시민권을 획득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로타리의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그라이딘저 씨는 1951년부터 이스라엘, 하이파 로타리클럽에서 활동해 오고 있다. "우리는 그가 로타리안인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로타리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그 길로 되돌아서야 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성공한 사업가로서 평생동안 봉사에 헌신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부친은 초아의 봉사를 확신한, 타고난 로타리안이었다."
그라이딘저 씨는 1966-67년에 지구총재로 봉사하면서 부친을 추모하는 장학기금을 설립했다. 이 기금은 장학생이 이스라엘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와 숙박비를 제공하며, 농업, 역사, 의학, 음악, 산업공학, 국제관계 등 전공 분야와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라이딘저 씨는 이 장학금의 궁극적 목적이 학업연마의 기회와 함께 이스라엘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라 밝혔다.
장학생을 추천하고자 하는 클럽은 그라이딘저 씨에게 e-mail 이나 전화 972-4-9116888로 문의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