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죽음

시카고 남부, 마운트 호프 묘지에 안장된 폴 해리스 묘와 비석. 시카고 로타리클럽의 초대 회장이었던 실베스터 쉴리도 이곳에서 몇 피트 떨어진 곳에 안장되었다. 진 해리스의 묘는 스코틀랜드에 있다.

모건 팍 교회에서의 장례식
1945년 12월, 폴 및 진 해리스 부부는 겨울철 휴양지인 앨라배마, 터스키지를 다시 찾았다. 기차로 시카고를 떠날 때부터 폴 해리스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리고, 터스키지에 도착하자마자 로타리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었던 실베스터 쉴리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폴 해리스는 1945년 12월 20일, 터스키스에서 '로타리 창립과 미래'라는 주제로 Leland Childs와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를 들어보고 기사(내용)를 읽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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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초에 폴을 심하게 독감을 앓았다. 시카고 로타리클럽의 회원이었으며, 1910년부터 1942년까지 로타리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체슬리 R. 페리가 터스키지로 달려와 폴 해리스를 방문한 뒤 "폴은 오랜 동안 폐 질환을 앓아 왔다. 그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으며, 영양 공급도 좋지 않은 상태"라고 보고하였다. 폴 해리스는 1946년 3월 28일이 되어서야 시카고로 돌아왔지만, 다시는 터스키지를 방문하지 못했다.
폴 해리스는 1947년 1월 27일 시카고에서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시카고 남부의 모건 팍 연합교회에서 있었으며, 페리와 T.A. 워렌 전 RI 회장, 그리고 당시 RI 회장이던 리차드 헤드키 등 3명의 로타리 지도자가 조사와 추모사를 낭독했다. 시카고 로타리클럽 역대 회장들이 운구를 맡았다. 추모사 읽기
폴 해리스는 자신의 영전에 조화대신 로타리재단에 기부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가 사망하기 며칠 전 로타리 지도자들은 미화 200만 달러를 모금하기로 한 1938년 결의안을 재천명한 바 있었다. (당시, 로타리재단의 자산은 약 65만 달러였다.) 그가 서거했다는 소식에 접한 로타리안들은 결의안 달성의 방법으로 '폴 해리스 추모 기금'을 설립하고, 전세계 로타리안들에게 로타리 창시자를 기리기 위해 기부해 줄 것을 권장하였다.
'폴 해리스 추모 기금'은 1946년 RI 이사회와 관리위원회가 승인한 로타리재단의 4개 목적 가운데 하나인 교육 사업을 위한 '로타리재단 휄로우십'을 출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RI 이사회는 1947년 5/6월 회합에서 동 프로그램을 위해 모금된 22만 8,000달러 중에서 6만 달러를 '로타리재단 휄로우십'에 배당하기로 결정하였다. (처음에는 10명의 휄로우에게만 장학금을 수여하기로 하였지만, 결국 휄로우십 원년에 18명의 휄로우들이 선발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폴 해리스 재단 휄로우십'인 것이다.